― “누가 더 힘든가” 싸움 말고, 같이 숨 쉴 수 있는 설계법
퇴근 후 집에 돌아왔는데,
한쪽은 아직 설거지와 아이 목욕, 다음 날 준비까지 정신이 없습니다.
다른 한쪽은 “나도 오늘 힘들었어…”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됩니다.
“나만 애 키워?”
“나도 밖에서 돈 벌잖아.”
요즘 한국에서 맞벌이는 선택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그런데 육아와 가사 분담만큼은 아직도 “누가 더 많이 했냐” 싸움이 되기 쉽습니다.

1. 숫자로 보는 한국 맞벌이 부부의 현실
먼저 현실부터 짚어보겠습니다.
통계청의 2024년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18세 미만 자녀가 있는 맞벌이 가구에서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 24분.
아내는 3시간 32분으로 5년 전보다 17분 줄었지만 여전히 2시간 이상 더 길었습니다. (국가데이터처)
서울시 조사에서도
맞벌이 가구의 평일 가사노동 시간은 여성 1시간 55분, 남성 1시간 9분으로 여성이 평일·휴일 모두 약 1시간 정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여성재단)
또 다른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 맞벌이 가구의 하루 평균 가사·육아 시간 합계가 약 3시간 40분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짧다고 분석합니다.
장시간 노동 탓에 집안일·육아에 쓸 시간이 부족하고, 그 부담이 특히 여성에게 더 많이 쏠려 있다고 지적합니다. (LG경영연구원)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최근 5년 사이 맞벌이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은 늘고, 아내의 시간은 줄어드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 중입니다.
하지만 “체감상으로는 여전히 내가 더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숫자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2. 육아 분담, 왜 이렇게 ‘기울어져’ 있을까?
1) 근로시간 구조 자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맞벌이 부부 연구들을 보면
누가 더 오래 일하느냐가 집안일·육아 시간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 남편의 유급노동시간이 길수록 아내의 가사노동 시간이 길어지고,
- 아내의 소득 비중이 높고 남편의 근무 시간이 짧을수록 남편의 가사·육아 시간이 늘어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ScholarWorks)
즉, “시간이 많은 사람이 더 한다”라기보다 시간이 없는 사람이 더 하는 이상한 구조가 자주 벌어집니다.
2) 아직 강한 성 역할 고정관념
서울·전국 단위 연구들에서는
“가사·육아는 부부가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말하는 인식은 높지만, 실제 시간 분담은 여전히 여성 쏠림이라고 지적합니다. (서울여성재단)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아직 예전 방식대로 움직이고 있는 셈입니다.
3) “돈 버는 사람이 더 힘들다” 프레임
한국은행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맞벌이 가정에서 배우자의 임금이 높고, 근무시간이 길수록 본인의 가사 노동 시간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즉,
- “아내가 더 많이 벌고 더 오래 일하면 남편이 집안일을 더 하고”
- “남편이 더 오래 일하면 아내가 집안일·육아를 떠맡기 쉽다”
는 패턴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 “밖에서 돈 버는 내가 더 고생한다”라는 무의식이 남아 있어서 육아 분담은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집니다.
3. 조금씩 변하는 풍경 – 아빠 육아휴직과 참여 확대
희망적인 변화도 분명히 있습니다.
통계청의 2023년 육아휴직 통계에 따르면 전체 육아휴직자 중 아빠 비중은 25.7%로, 출생아 부모 기준 육아휴직 사용률도 아빠 7.4%, 엄마 73.2%로 조금씩 올라가는 추세입니다. (국가데이터처)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25년 1~9월 육아휴직급여 수급자 14만여 명 가운데 아빠 육아휴직 비중은 약 37%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용노동부)
물론 여전히 엄마 쪽이 훨씬 많지만 “아빠도 육아휴직 당연히 쓴다”는 문화가 점점 현실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만 늘리는 게 아니라,
- 아이와의 애착 형성,
- 엄마의 경력 단절 예방,
- 부부 관계의 동등한 파트너십 형성
까지 연결되기 때문에 육아 분담의 장기적인 판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4. 싸우지 않고 육아를 나누는 부부들의 공통점
현장에서 상담·연구 사례를 보면 육아 분담을 잘하는 부부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① “기분” 말고 “시간”으로 이야기한다
“나만 애 본 것 같아”
“나도 힘들어.” 이렇게 말하면 바로 감정 싸움이 됩니다.
대신, 평일 하루를 기준으로
- 회사 시간
- 통근 시간
- 가사·육아 시간
- 자기 시간
을 서로 같이 표로 그려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시간이 눈에 보이는 순간 “누가 더 힘든가” 싸움이 아니라 “그럼 여기에 누구 시간을 더 넣을 수 있을까?”라는 문제로 바뀝니다.
② 육아를 ‘업무’처럼 구체적으로 쪼갠다
“육아는 같이 하자”는 말만으로는 절대 안 나뉩니다.
- 등·하원
- 식사 준비와 먹이기
- 목욕
- 잠 재우기
- 병원·예방접종
- 장난감 정리, 빨래, 장보기
이렇게 눈에 보이는 업무 단위로 쪼개서 “각자 담당”을 정해두면 훨씬 덜 싸웁니다.
그리고 중요한 원칙 한 가지.
“맡은 사람에게는 태클을 최소화한다.”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도 한 번 책임지고 맡아본 사람이 나중에는 스스로 개선합니다.
③ ‘완벽한 5:5’보다 ‘서로 납득되는 6:4’를 목표로
현실적으로 항상 정확한 5:5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프로젝트 마감, 야근, 출장, 몸 상태, 아이 컨디션,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당일 기준으로는 늘 어느 한쪽이 더 힘들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간을 길게 보거나, 패키지로 보상하는 방식이 좋습니다.
- “이번 달은 내가 야근이 많으니, 주말 외출은 당신이 자유 시간 우선.”
- “이번 주는 당신이 아침 루틴을 많이 맡았으니, 나는 주말에 아이 데리고 나가 있을게.”
이렇게 “주간·월간 단위의 균형”을 맞추는 부부가 장기적으로 훨씬 덜 지칩니다.
④ 주 1회 ‘부부 회의’로 계속 조정한다
아이 연령, 회사 업무, 부모님 도움 여부에 따라 육아 분담은 계속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부부가 일요일 밤 10분 정도 ‘부부 회의'를 합니다.
- 이번 주 힘들었던 점 1가지씩 말하기
- 다음 주에 꼭 조정하고 싶은 포인트 1개씩 말하기
- 고마웠던 점 1가지씩 말하기
규칙은 단 하나.
“비난이 아니라 조정과 감사 중심으로 말하기.”
이 10분이 누적되면 육아 분담 갈등이 크게 줄어듭니다.
⑤ 외부 자원·제도를 적극 활용한다
모든 걸 둘이서만 해결하려고 하면 지쳐서 결국 누군가 쓰러집니다.
- 육아휴직·근로시간 단축 제도
- 가족 돌봄 휴직
- 아이돌봄 서비스, 시간제 보육
- 친정·시댁, 지역 공동육아, 키즈카페, 공부방
가능한 자원들을 “죄책감 없이” 쓰는 것이 맞벌이 부부의 생존 전략입니다.
육아는 둘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회가 함께 떠받쳐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5. 상황별 육아 분담 아이디어
1) 야근·교대 근무가 잦은 부부
- 일정이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사람이 아이의 루틴(등·하원, 병원, 숙제)을 담당합니다.
- 대신, 야근이 잦은 사람은 주말 메인 돌봄 + 평일 특정 시간대(예: 자기 전 30분 독서)를 책임집니다.
2) 부모님 도움 없이 둘이서만 키우는 경우
- 집안일은 최대한 자동화·간소화(로봇청소기, 밀키트, 세탁·건조기)
- “깨끗한 집”보다 “덜 지친 부모”를 우선순위로 둡니다.
- 아이가 자는 시간에는 집안일보다는 둘의 회복(수면·대화·가벼운 취미)을 먼저 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이득입니다.
3) 한쪽이 육아휴직 중인 경우
육아휴직을 쓰는 쪽이 24시간 육아를 책임지는 “전담 부모”가 되면 복직 후 갈등이 폭발하기 쉽습니다.
- 평일 저녁 이후와 주말은 비휴직자가 메인 돌봄
- 육아휴직자는 아이와의 관계·발달 체크, 일정 관리 중심 으로 역할을 나누면 복직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공동 육아로 이어집니다.
마무리 – “누가 더 힘든가” 말고, “어떻게 같이 버틸까”
맞벌이 부부의 육아 분담을 둘러싼 갈등은 사실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한국 사회의 긴 근로시간, 여전히 남아 있는 성 역할 인식, 부족한 돌봄 인프라가 겹치면서 아이를 키우는 집에 “시간 부족”이라는 만성적인 압박을 주고 있습니다. (journal.khma.kr)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 시간을 함께 들여다보고,
- 역할을 구체적으로 나누고,
- 감정보다 “설계”로 육아를 대하는 것.
완벽한 5:5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오늘도 둘이서 여기까지 버텼다”는 느낌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맞벌이 부부가 만들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육아 분담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 출처
- 통계청, 「2024년 생활시간조사 결과」 – 18세 미만 자녀 있는 맞벌이 가구의 가사노동 시간 변화(남편 +13분, 아내 -17분). (국가데이터처)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서울시 여성·남성의 돌봄과 가사노동 분담 실태」 – 서울 맞벌이 가구 여성·남성의 평일·휴일 가사노동 시간. (서울여성재단)
LG경제연구원, 「한국 맞벌이, 가사노동 시간이 부족하다」 – 맞벌이 가구의 가사·육아 시간 3시간 40분 및 효용 감소 분석. (LG경영연구원)
허수연·김한성,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 시간과 분담에 관한 연구」 – 근로시간·소득·성역할 태도가 분담에 미치는 영향. (ScholarWorks)
통계청, 「2023년 육아휴직통계 결과(잠정)」 – 출생아 부모 육아휴직 사용률 및 부·모 비율.
고용노동부, 「올해 9월 육아휴직 사용자 14만명 돌파, 아빠 육아휴직 비중 약 37%」 보도자료.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맞벌이부부 가사노동분담, 인식 높아도 현실은 제자리」 이슈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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